[김태민 기자의 전통을 찾아서] 안성시 도기동, 마을 평안 기원 산신제

김태민 기자 | 기사입력 2019/02/07 [13:10]

[김태민 기자의 전통을 찾아서] 안성시 도기동, 마을 평안 기원 산신제

김태민 기자 | 입력 : 2019/02/07 [13:10]

 

▲ 산신님께 타고 가는 말이라고 합니다.     © 김태민 기자

 

 지난 6일 오전9시 경기도 안성시 도기동 산신당(서낭당)에서 마을의 평안을 기원하는 산신제 올렸다.

 

도기동의 서낭제는 수 백년 전부터 지내기 시작했으며 일제시대 때 한 30여 년 지내지 못한 것 외에는 마을이 형성된 이래로 계속 지내왔다고 한다.

 

권영태통장에 따르면 “300년에서 400년 전부터 지내온 것으로 알고 있다.

예전에는 음력 정월 보름날 첫 새벽(자정 경)에 지내던 것이었으나 마을에 초상이 났다든가 아이의 출산으로 피부정이 있을 경우 등 부정한 일이 생기면 정해놓은 날짜에 제를 지내지 못하고 계속 연기하게 됨으로 제물 준비도 새로 하고 하는 등 번거로워 최근에는 아예 정초에 날짜를 잡아 지내게 되었다. 제례 시간도 아침 10시경으로 옮겨서 지내게 되었다”고 말했다.

 

도기동의 서낭제는 제관 2명과 주당(제를 주관하여 관리하는 사람) 1인을 중심으로 하여 마을의 어른들 몇몇이 참관하는 가운데 진행되었다.

 

먼저 돼지머리와 제물을 진설하고 제관이 술을 따르고 절을 한 후 축관을 겸한 주당이 축문을 읽었다.

축문의 내용은 산신님에게 마을의 온갖 질병을 물리쳐 주시고, 모든 재앙을 물리쳐 마을 주민들의 화합과 평안, 가축의 번성을 비는 내용이다. 축문을 읽고 다시 제관들이 절을 한 후 제물 중 돼지머리의 피가 있는 부분을 중심으로 해서 접시에 조금 덜어 삼베에  싸서 제단 위의 일정장소에 묻는다. 그 위에다 제주를 부은 후 다시 제관이 상에 술을 따르고 절을 한 후 제단 주변의 사방에 술과 안주를 뿌린다.

마을 어른들에 따르면 이는 날짐승들이 먹으라고 주는 것이라 한다.

 

서낭제는 절차와 제물은 예전에 비해 많이 간소화되었으나 마을의 평안을 비는 주민들은 정성을 다하는 모습이었다. 예전에는 돼지를 잡아 지냈으나 지금은 돼지머리로 대신하고 있었다.

 

돼지머리는 원래 검은 돼지를 산채로 제단에 가지고 가서 잡아서 올리던 것이었고, 접시에 담는 것은 돼지의 피였다고 한다.

 

 

산신제가 끝나고 서낭당으로 내려와서 다시 제물을 진설하고 제를 지낸다.

서낭당에는 하얀 백지로 싼 위패가 넷이 존재하고 그 양 옆으로는 백마와 적마가 있는데, 이 말들은 산신을 태우고 다니는 말이라고 한다.


서낭당에서는 마을을 지켜주는 산신님에게 제를 지내고 마을 전체를 대표하는 소지를 올린 후에는 개별적으로 제의에 참가한 마을 어른들이 집안의 복을 비는 소지를 올린다.

 

또 제의에 참가한 사람들이 제당 앞에서 제물을 음복하고, 음복이 끝나고는 마을 노인정에 제물을 가지고 가서 음식을 나누어 먹는다.

 

예전에는 도기동에 마을 공동우물은 서원 말 우물과 중앙의 우물, 남촌 말 우물 등 세 군데가 있었으며 우물제도 함께 지냈는데 지금은 중앙의 큰 우물과 서원말 우물만이 남아있고, 특별히 우물제는 드리지 않았다.

 

제례 후에도 제례음식을 마을 사람 모두에게 나누어 주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마을 노인들에게 서낭제를 무사히 지낸 것을 알리고 음식도 노인정에만 제물을 드리는 것으로 바뀌었다.

 

 

서낭제를 위해서 마을에는 당계가 존재했었는데, 이는 마을의 가구들 거의 모두가 참가하는 것이었고, 당계에서는 제비마련을 위해 서낭당 앞의 밭도 소유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당계가 없어지고 주당 한 사람이 제를 관리하며, 당계의 자금을 마을로 이관하여 마을기금으로 제를 지내게 되었다고 한다.

 

예전의 마을 제의에서는 제례에 따른 금기 또한 엄격하여 한번 제관으로 선정되어 제를 치를 사람은 다시 하고 싶지 않을 정도였다고 한다.

 

마을입구와 제의 장소 등에는 금줄을 쳐서 부정한 사람의 접근을 막고, 생기복덕을 가려 제관이 선출되면 그 사람들은 부정한 것을 보지 못하도록 고깔을 쓰고 다녀야 하며, 제관들은 마을의 우물에서 찬물로 목욕을 하고 제를 진행하였다고 한다.

 

이렇게 엄격하게 지내던 제의가 시절의 변화와 함께 점점 약화되어 오더니 결국은 존폐의 기로에 서 있는 것이다.

 

 “마을 어른들은 서낭제를 지내서 그런지 그 동안 일제 때 징병에 가거나 하더라도 이 마을에서는 사상자가 없었으며 마을이 편했다”고 말했다.

 

권영태통장은 도구머리에 관련된 문헌이나 민담을 수집하고 수배하여 후손들에게 물려 줄 문화유산을 정리 중이라고 한다. 점점 잊혀져가는 문화를 바로 잡고 후손들에게 올 바른 문화를 알려 주고 싶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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